어느 날 스코틀랜드 목사가 맹인 찬송 작사가인 패니 크로스비에게 앞을 볼 수 있는 은총을 받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. 그러자 패니는 “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맹인으로 나게 해달라고 말할 겁니다. 천국에서 처음으로 뵐 분은 저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일 테니까요.” 하고 말했다.
그녀의 유명한 찬송가 <후일에 생명 그칠 때> (Saved by Grace)에도 이러한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.
후일에 생명 그칠 때 / 여전히 찬송 못하나
성부의 집에 깰 때에 / 내 기쁨 한량 없겠네
내 주 예수 뵈올 때에 / 그 은혜 찬송 하겠네
패니 크로스비는 태어난지 6주째 눈에 가벼운 염증이 생겼다. 의사가 권한 온습포 요법을 따르다가 패니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. 아버지는 그녀가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고 패니는 어머나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. 여덟 살 때 그녀는 처음으로 이런 시를 썼다.
비록 앞은 못보지만 / 나는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가!
나는 다짐했다 / 주어진 것에 만족하리라고
패니는 정말 만족하며 살았다. 그녀는 열 살 때 성경 전체와 복음성가 네 개를 암속할 수 있었다. 기타 치는 법을 배우고 곧바로 자작시를 노래로 만들었다. 열다섯 살 때는 뉴욕에 있는 맹인학교에 들어가 18년 동안 학생 및 교사로 있었다. 그리고 맹인학교에서 만난 알렉산더 반 알스타인과 서른여덟 되던 해에 결혼했다.
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패니가 찬송가만 쓴 것이 아니다.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노래 가사를 지었지만 대부분 그리스도교와 관련이 없는 대중적인 곡이었다. 그러다 마흔네 살이 된 1864년 그녀는 찬송가 작사가이자 출판업자인 윌리엄 브래드베리를 만나게 된다. 윌리엄은 패니에게 찬송가를 써 보라고 권했고 그때부터 그녀는 줄곧 찬송가만 작사했다. 50년 가까이 무려 8천 곡이 넘는찬송가와 복음성가가 탄생했고 대부분 복음주의 교회에서 애창되었다.
빌리 그래이엄이 부흥집회마다 자주 불러 유명해진 패니의 복음성가 두곡 중 하나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<예수로 나의 구주삼고> 이다.